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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F I D I C> 2편 발주자(The Employer)
  • 데일리해외건설
  • 승인 2018.04.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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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는 FIDIC 계약조건 첫머리에 나오는 ‘정의’에 대해 얘기했다. 물론 Havard 대학 마이클 샌더스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는 아니지만…

FIDIC 1조에는 ‘정의’뿐만 아니라; 계약의 해석, 계약서류간 우선순위 등등 여러 얘기가 나오지만, 다 건너 뛰고 2조 ‘The Employer (발주자)’로 넘어가보자. 이 조항의 주요 내용은 발주자의 의무에 대한 규정이고, 그 중 중요한 내용인 현장 인도(통상 site handover라고 불러왔음)와 관련된 내용으로 첫 항목인 2.1 Right of Access to the Site가 시작된다.

시공자에게 현장 진입 권한을 부여하고 또 점유를 허용하는 것은 발주자의 의무이다. 단;

1. 그러한 권한은 시공자가 독점하는 것은 아니며,

2. 부분적으로 현장 인도가 이루어져도, 시공자가 제출한 공정표에 따라 공사 진행이 가능하면 발주자 의무는 지켜진 것이다

라는 데서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보자!

중앙아시아 어느 국가에서 국제금융기관(MDB: multilateral development banks) 차관사업으로 도로 공사 하나를 국제입찰(international competitive bidding)로 발주했다. 그런데 자국 업체 참여 극대화를 명분으로, 노반(subgrade)은 현지 업체가 별도 계약으로 수행하도록 하고, 국제입찰의 공사 범위는 그 위의 포장 관련 작업으로 국한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국제계약 공사에서 발주자의 현장 인도 의무는 어떻게 되는가?

우선 아래 그림에서 보듯 노반공사는 포장공사의 필수 선행 작업이다. 건축공사라면 top-down 공법 등으로 상부에서 하부로 공사 진행도 가능하겠으나, 도로공사의 경우에는 아직 그런 공법이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발주자는 현지업체와의 계약에서 완료된 노반공사를 인수받아 포장공사 업체에게 인도해줘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지 건설업체들이 너무 영세하다 보니 공사 수행 능력이 제한돼 노반 공사를 너무 많은 계약으로 분할 발주하면서부터 발생한다. 각기 공사 수행 능력이 다르다 보니 분할된 노반공사의 완공이 아래 그림과 같이 비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아래 그림과 같은 사례를 보자.

 

이 사례에서 발주자는 노반 완공 순서대로 포장공사 업체들에게 부분마다 구간별로 인도해주면서 자신의 현장 인도 의무를 다했다고 강변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주장이 맞는 걸까? 문제는 부분적 현장 인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포장 작업 sequence에 맞지 않게 현장 인도가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이는 명백한 발주자의 의무 위배로, 시공자에게 공기 연장 및 비용 보상을 해줘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발주자는 공정 지연을 이유로 기성조차 제때 지급하지 않았고, 시공자는 기성 미지급을 이유로 공사 중단 조치로 대응했다. 그 결과는 필자가 확인은 못했으나, 다행히 어느 정도 보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안다.

또 하나 이 조항에서 눈에 띄는 점은 시공자가 이행보증(Performance Security, 통상 우리가 P-Bond라고 부르는 것)을 제출하지 않으면, 발주자가 현장 인도를 보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FIDIC Red Book의 경우 착공지시는  8.1 [Commencement of Work]  조항에 따라 시공자의 P-Bond 제출과는 무관하게 늦어도 낙찰통보(Letter of Acceptance) 후 42일내에 발급되도록 돼있다. 그러면 그때부터 공기는 째깍째깍 까먹기 시작하는데, 시공자가 P-Bond를 못 내서 현장인도를 못 받고 그래서 공사 수행을 못하게 된 만큼 준공이 지연되어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된다면 어떻게 되는가? 현장인도 지연으로 공기연장 신청해보았자, P-Bond 제출 지연은 시공자 잘못이므로 거부당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 이점에서 보면, FIDIC은 JCT(Joint Contracts Tribunal)나 FAR(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 미 연방정부 조달규정)보다 합리적이지 못하다.

1. JCT의 경우에는 일단 낙찰통보를 받으면 착공지시가 이루어지고 공사가 진행되면서 P-bond를 제출하면 정식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만일 P-Bond 제출이 불가한 것이 판명되면, 낙찰통보는 취소되고 시공자와의 계약관계는 해지된다. (FIDIC에서는 계약 해지를 “terminate”라고 하나 JCT에서는 “determine”이라고 함)

2. FAR의 경우에는 낙찰통보, 계약체결 후 P-Bond를 제출해야 착공지시가 발급되고 공사가 개시된다. 물론 P-Bond를 제출하지 못하면 계약은 해지된다.

어쨌든 위 두 형태의 계약조건 아래서는 P-Bond를 못 내면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FIDIC이나 다른 표준계약과 모두 같지만, 적어도 P-Bond 제출 지연으로 지체보상금까지 내야 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FIDIC Pink Book  (MDB Harmonized version)에는 P-Bond 제출 후 현장인도가 이루어져야 공기가 기산되도록 규정돼 있으므로, 위 얘기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이 조항에서 또 하나 눈 여겨 봐야 할 조항이 “2.4 Employer’s Financial Arrangements” 이다. 이는 공사 대금 재원이 확보돼있음을 발주자가 증명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다. 발주자가 이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시공자는 공사를 일시 중단하거나 심한 경우 계약 해지까지 할 수 있다. 이 조항은 FIDIC 4판까지는 없었으나 FIDIC New version (1999)에 처음으로 등장했고, 따라서 FIDIC Pink Book에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시공자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조항이다. FIDIC은 초판 발행 (1957) 이래로 대략 10년 주기로 개정판을 발행했는데, 그간에 FIDIC 조건을 사용한 공사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모아 그에 대한 해결책을 개정판에 담아왔다. 예를 들면 그간 FIDIC은 공사감독(Engineer)의 권한이 너무 크고 구조적으로 발주자와 고용관계를 가지므로 발주자에게 편파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라는 거센 비난이 있었다. 이에 따라 1987년에 발행된 FIDIC 4판에는 “Engineer to Act Impartially”라는 조항이 추가되었다.

사실 AIA(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나 FAR 같은 미국식 계약조건에서는 오래전부터 공사대금 재원 확보를 발주자가 증명해주지 않으면 계약이 아예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해왔다. 반면 FIDIC은 1999년까지도 이에 대해 침묵해왔다. 그러면 그 침묵의 결과는 어땠을까? 1970~80년대에 중동 건설 붐을 타고 많은 우리 건설 업체들이 중동에 진출한 바 있다. 그 중 꽤 많은 업체가 중동 지역에서의 미수금 부담을 떨쳐 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스러져간 일을 기억하는가? 당시 중동 건설 공사는 거의  FIDIC이나 아니면 그를 약간 변형한 자체 표준 조건으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계약조건에는 발주자의 공사대금 확보 증명 의무 조항이 없었고, 한술 더 떠서 공사대금을 못 받아도 시공자가 공사 중단이나 계약해지 권한을 가질 수 없도록 돼있었다. 시공자가 공사대금을 못 받아 공사 지연이나 중단의 몸짓만 취해도, 발주자는 시공자의 계약조건 위배를 들어 이행보증 몰수 위협으로 가련한 시공자를 윽박질렀다. 당시 해외공사 이행보증 몰수는 즉각적인 회사의 존폐와 관련된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미수금은 쌓여가는데 공사는 계속할 수 밖에…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적어도 이 조항이 계약에 있는 한, 돈 못 받고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를 수행해야 하는 억울함은 피할 수 있다.

 

송용민 중소기업수주지원센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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